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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그는 누구인가? ( 박지원 국정원장, 박지원 프로필, 논란)

IlIllIIIlllIII 2021. 9. 14. 16:17

안녕하세요!

 

오늘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글의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박지원 프로필

2. 박지원 생애 (미국 사업가 시절, 실명, 애처가)

3. 박지원 별명(정치 9단, 쪽집게, 꾀돌이)

4. 박지원 논란

    1) 뇌물 수수 논란

    2) 전두환 찬양 논란

 

 

1. 박지원 프로필

이름 박지원
생년월일 1942년 6월 5일 (80세)
고향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학력 문태고등학교 졸업
단국대학교 상학과 졸업
현직 제 14대 국가정보원장 (2020.07 ~ )
경력 제 36대 문화관광부 장관 (1999 ~ 2000)
제 25대 대통령비서실장 (2002 ~ 2003)
제 14, 18, 19, 20대 국회의원

 

2. 박지원 생애 

제 16대 뉴욕한인회장 박지원

 1942년 6월 5일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서 출생했다. 박지원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 박종식(1910년 ~ 1948년)으로 1993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1948년 아버지를 여의고 진도에서 목포로 이주했다. 그 후 단국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한 후 LG상사(당시 럭키금성상사), 동서양행 등 기업에서 근무했다. 이후 주재원으로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피혁과 가발 수출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80년대 초 뉴욕 한인회장과 미주지역한인회 총연합회 회장을 지냈다. 

 그 후 박지원은 정계 진출에 꿈을 꾸었는데, 그래서 만났떤 사람이 놀랍게도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이었다. 박지원은 전경환과 가깝게 지냈고, 실제로 1981년 11대 총선 당시 전경환의 도움으로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여 전국구(지금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으려고 했었으나 해외교포라는 결격 사유로 인해 좌절되었다. 

 그러던 중 1983년,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을 김경재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고, 박지원은 5.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전해들은 뒤, 통렬하게 반성했고, 그 후 김대중의 후원자로 활동하였다.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지며 김대중이 사면되자, 박지원 역시 미국에서의 사업을 모두 정리한 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박지원 애처가

 각별한 애처가로 알려진 박지원은 아내인 이선자 여사가 지병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간병에 전력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 후 2018년 아내가 소천한 후, 아내에 대한 그림움과 앞으로 남은 시간을 아내의 당부대로 살겠다는 다짐을 담아 아래의 책 <고마워-"미안했고, 잘못했고, 사랑해"> 을 발간했다. 책의 개요만 봐도 그에게 아내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 수 있다.

 

고마워:“미안했고 잘못했고 사랑해”, 메디치미디어

 

* 박지원 실명

 박지원 국정원장은 왼쪽눈을 실명하고 의안을 착용하고 있는데, 이는 지병인 녹내장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3. 박지원 별명(정치 9단, 쪽집게, 꾀돌이)

 

 오랜 정치 경력으로 인해 정치 9단, 쪽집게, 꾀돌이 등의 별명이 있는 수완가로 평가된다. MBC의 21대 총선 개표방송인 MBC 선택 2020에서는 아예 8선 같은 4선 이라고 표현했다. 깔끔하고 명쾌한 메시지와 능수능란한 정치적 감각, 상대방의 약점과 흠결을 타격할 수 있는 정보력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국민의당 시절 당대표로는 안철수, 천정배였지만 국민의당이 제 20대 총선에서 호남표를 싹쓸이하고 제대로된 정당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원내대표로 활약하던 박지원의 공이라는 평이 많다. 

 실제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거대야당은 더불어민주당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싱크탱크 역할을 하며 정국을 이끌었다. 권력의 곁에 있어보기도, 권력을 가져보기도 한 정치인으로써 그 생리를 잘 알고, 고령이지만 여전히 빠르고 맥을 잘 짚는 상황판단을 보여주고 있다. 2016년 12월 9일 헌정 사상 2번째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진행돼 가결된 후, SBS에서 박지원을 초청해 의견을 묻기도 했다. 

 

https://news.v.daum.net/v/20161209220504433?f=m 

 

박지원 "'선총리 후탄핵'했으면 혼란 없었을 것"

<앵커> 그럼 여기에서 이번 탄핵안을 주도한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를 모시고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오늘(9일) 표 결과를 보면 새누리당 내에서도 예

news.v.daum.net

 

 

4. 박지원 논란

 

  1) 뇌물 수수 논란

 

 불법 대북송금 사건에서 현대로부터 150억원 수뢰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SK그룹에서 7,000만원, 금호그룹에서 3,000만원을 받고 직권남용, 외국환거래법 및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과 추징금 1억원을 선고 받았다. 당시 2004년 최후진술 에선 "입으로는 변화를 부르짖으며 관행에 젖어 잘못한 것은 처벌받겠다."고 했다. 대북송금사건 당시 구속되어있는 동안 지병인 녹내장이 악화되어 왼쪽 눈에 이어 오른쪽 눈을 실명할 뻔했다. 박지원 본인도 재판 당시 '남은 한쪽 눈마저 실명될 위기다'라며 선처를 호소하며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했고 받아들여졌다. 

 이후 집행정지와 재구속을 끊임없이 반복하다가, 2007년 2월 사면을 받아 3년 중 1년 5개월 정도를 채우고 출소하게 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52&aid=0000035754 

 

박지원씨 한달간 구속집행정지

[앵커멘트]현대비자금 15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돼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한달간 일시적으로 '자유의 몸' 이 됐습니다.담당 재판부는 실명 위기에 처한 오른

news.naver.com

 

 

2) 전두환 찬양 논란

 박지원은 1972년 금성(현 LG전자) 주재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사업가로 활약하다 뉴욕한인회장이 되었는데 1981년 1월 당시에 대통령이던 전두환이 미국을 방문할 때 미국 교포로써 한인회장 박지원을 중심으로 각 교포단체들이 참가하여 환영준비위를 구성해서 미국 방문을 환영해주었다. 또한 "뉴데일리"에 의하면 박지원은 1981년 한국방송공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며, 12.12와 5.18은 영웅적인 결단이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1983년 무렵에 미국으로 망명 온 김대중을 만나서 얘기를 나눈 후 그 실상을 알고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았다. 민주주의를 위해 벽돌 하나라도 놓겠다는 심정으로 살겠다."라고 말하며 각오를 밝혔고, 미국에서 힘들게 마련한 기반을 놔두고 본격 김대중의 정치 활동을 돕기 시작한다. 

 이후 국정원장 청문회에서 이 부분을 사과하기도 했다. 

 

 

오늘은 이렇게 박지원 국정원장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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